이야기가 있는 풍경

[스크랩] 슬럼가를 통해 바라본 미국 사회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 2015. 12. 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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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럼가를 통해 바라본 미국 사회

                 입력 2015년1월9일 

 

* 출처: 조선일보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08/2015010801434.html

 

 

 

지난 주에 이어 2006년 미국 연수 당시 썼던 글을 게재합니다.

[Cambridge diary II]

필라델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그 근처에 살고 계신 친지분께서 필라델피아 구경을 시켜주셨는데, 자유의 종 등 유명한 미국 건국시기의 역사관광지를 스쳐 지나가다가, 어느새 슬럼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역시 천양지차더군요.

창문유리가 다 깨져서 합판으로 대충 바람만 가려놓은 주택들, 반쯤 부서져 있는 채 방치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물들, 시에서 수거해 가지도 않는지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 오후 세 시 경인데, 행인은 없는 스산한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서성거리거나 죽치고 앉아 있는 허름한 힙합 차림의 흑인 청년들. 대부분 마약 거래상이라고 하더군요. 해가 지면 매춘부들이 거리마다 서성거린다고 하고요.

세계최강대국 5대 도시 한가운데의 낮풍경이었습니다.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이렇게 넓은 구역이 말 그대로 쓰레기장처럼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건 인간이 사는 곳이라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가난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달동네에는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의지와 자식새끼 만큼은 번듯하게 공부시키고 싶은 미래에 대한 희망, 가족간의 온기 같은 것이 남아 있어 사람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어떠한 미래에 대한 희망의 조각도 삶에 대한 의지도 느껴지지 않아서 더욱 무서웠습니다.

전 신호대기로 멈춰 설 때마다 누가 차문을 열고 'Hey, Man~' 어쩌고 하면서 총을 들이댈까봐 솔직히 벌벌 떨었답니다. 그런데 친지분은 유유자적. 알고보니, 일부러 이곳을 이렇게 돌면서 제게 진짜 미국을 보여주려고 하신 거였답니다. 이보다 훨씬 더 험악한 지역에서 십여년 이상을 슈퍼마켓을 운영하시면서 자수성가한 분이시기에, 이 거리가 당신 집 앞마당 마냥 편안하시다나요.

인상 깊었던 모습은, 한 흑인 커플이 어디에서 장을 봐 오는지 비닐 봉지를 산더미같이 품에 안고 하염없이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껌 한 통을 사러 가려 해도 차를 끌고 나가서 대형 마트에 가게 됩니다. 우리처럼 동네 곳곳에 가게가 있지도 않구요. 처음 미국 온 날 애들 먹일 우유 한 통 사오느라 40분을 걸었습니다. 차가 두 발이나 다름 없는 사회죠.

그런데, 저들은 차가 없어서 저렇게 짐을 들고 하염 없이 걷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한인 교민분들이 흑인 거주지역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슈퍼를 운영하면서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돈이 벌리기 때문입니다. 돈이 벌리는 이유는, 경쟁이 없는 독점시장이기 때문이죠. 이 지역에서 장사하려는 백인들은 없습니다. 이 지역에서 장사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흑인도 없습니다. 미국 전역에 널린 것이 Shaw's, Target, Walmart 등등 대형 마트들이지만, 이들은 거기까지 타고 갈 차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슈퍼에서는 대형 마트들과의 경쟁 따위 의식할 필요 없고, 받고 싶은 만큼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빈민들 집단 거주지역에서는 술, 담배, 복권 등이 워낙 잘 팔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에서 주는 월 20만원으로 살아가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집단거주 영세민 아파트의 슈퍼는 의외로 이문이 쏠쏠합니다. 소주만도 얼마나 많이 팔리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이 지역에 딱 하나 주유소가 있었는데, 갤런 당 2달러 33센트를 받더군요. 저는 이렇게 비싼 곳은 처음 봤습니다. 하버드 로스쿨 근처 주유소는 2달러 9센트를 받고 있더이다. 백인 중산층 거주지역 주유소보다 이 곳의 기름값이 훨씬 비싼 이유가 무엇일까요?

친지분의 설명은 슈퍼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주유소에 온다는 것은 폐차 직전일지언정 차가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싼 주유소를 찾아 가면 될 것 아니냐? 대답은, 이들은 가격을 비교하여 싼 곳을 찾아가는 등의 생각도 별로 안 한다는 겁니다.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뉴저지 주에 근사한 식민지 풍 주택을 짓고 숲도 소유하고 계신 어느 교민분은 인터넷 반짝 세일 정보를 주시하다가 단돈 299불에 7박 8일 카리브해 크루즈를 다녀왔다고 자랑하시고, 저만 해도 책 하나 살 때도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최저가를 찾고 마일리지다 쿠폰이다 써 가면서 호들갑을 떨고, 식료품도 보스턴 시내를 다 뒤져서 제일 저렴한 체인인 마켓 바스켓까지 15분을 운전해 장을 보러 다니는데, 컴퓨터도, 인터넷도, 차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벌어보려는 악착같은 의지조차 없는 이들은 시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받는 하나밖에 없는 작은 가게에서 술, 담배, 싸구려 과자 나부랭이를 사서는 하염 없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은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르죠. 집창촌 아가씨들에게 싸구려 화장품이나 옷을 팔러다니는 아줌마들은 떼어 온 물건 값의 열 배 스무 배를 받아내고, 그녀들이 가는 미장원에서는 일반 동네 아줌마한테 받는 값보다 훨씬 비싼 값을 그녀들에게 받습니다. 경제학적으로는 최적화된 가격차별화 정책입니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시장이니까요.

경제학이란 참 잔인할 정도로 깔끔한 학문입니다. 비루하고 때로는 피비린내까지 나는 인간들 행동의 인센티브를 아주 무색무취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주니까요. 뉴욕시의 범죄율이 극적으로 낮아진 현상의 원인에 대한 분석도 줄리아니 시장의 영웅적 업적 운운보다 낙태허용으로 인해 장차 범죄자가 될 흑인 빈민층 자녀 집단이 아예 출생하지 않게 되어 뉴욕시의 범죄율이 극적으로 저하한 것이라는 시카고대 스티븐 레빗 교수의 분석이 얼마나 명쾌합니까. 몸서리가 쳐지도록.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반응하실지 모르겠군요.

-미국은 야만적인 계급사회야.
-흑인들이 저런 구조적인 모순에서 해방되어야 할텐데
-저런 참담한 삶을 방치하면서 복지예산을 삭감하자는 공화당이 자꾸 집권하는 이유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하지만, 세상 일에는 늘 여러 얼굴이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여러 교민분들의 경험담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슬럼가에서 슈퍼를 오랫동안 운영했는데, 강도도 여러 번 당했지만, 더 황당한 것은 매일 물건 사러 오는 단골들이 아주 버젓이 물건을 훔쳐서 옷속에 쑤셔넣고 나가곤 한다는 거다. 어이가 없어서 불러 세우고 물건 다 꺼내 놓고 가라고 하면 쭈뼛거리고 꺼내 놓고 가고는,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헤이 맨~ 하면서 물건 사러 온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면 바로 마약을 사거나 술을 산다. 가게 점원으로 취직을 시켜 줬더니 며칠 일해서 돈을 벌면 바로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가 돈 떨어지면 나타나서 일 시켜달라고 하더라. 얘들 사는 거 옆에서 지켜보면, 솔직히 너무 동물적이다. 육체적 쾌락 외에는 관심이 없다. 삶에서 추구하는 게 섹스밖에 없는 것 같다.

-한번은 다리를 심하게 저는 인도 청년이 찾아와서 무엇이든 일자리를 달라고 애걸하기에 너무 불쌍해서 점원 일을 시키고 가족같이 대해줬더니, 총 든 흑인 강도에게 덤비면서까지 가게를 자기 가게처럼 아끼더라. 10년을 데리고 있었는데, 열심히 저축해서 고향에서 이쁜 아가씨 데려와서 결혼도 하고, 이제 독립해서 자기 가게 운영하면서 잘 산다. 걔 생각하다가 여기 길바닥에 대낮부터 마약하고 널브러져 있는 사지 멀쩡한 젊은애들 생각하면 정말...

-정부에서 정책을 바꿔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했는데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니까, 얘네들이 우리 가게를 찾아와서 그냥 자기들이 구직하러 왔었다는 서류에 사인만 해달라는 거다. 취직은 안 시켜줘도 되니까 사인만 해달라고. 이걸 모아서 시에 갔다내고 보조금을 타서는 또 마약을 사러 가는 거지.

이 이야기를 해 주신 교민분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여러모로 실패를 맛보고, 거의 맨주먹으로 건너와서 공사현장일, 토큰 판매, 영세 슈퍼, 세탁소 등등으로 집 사고, 차 사고, 이제는 나름대로 아쉽지 않게 사는 분들이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거의 대부분 가정의 자녀들이 아이비리그 등 세칭 명문대를 졸업해서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 매니저, 하버드 의대 연구원, 베인 앤 컴퍼니 컨설턴트, 월 스트리트 증권맨 등등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흑인 강도들한테 칼 두 번 맞고 총도 두 번 맞고도 살아남아서 하루 14시간씩 일해서 큰놈 하버드 의대를 보냈어. 그 녀석 머리가 좋지도 않은 놈이 우직하게 공부만 하더니, 이제 레지던트 마치면 초봉이 60만불이야. 그런데 그 3분의 1이 세금으로 나가지. 그 세금으로 다시 여기 있는 애들 마약 살 돈을 대 주게 될테고 말야.

물론 이 얘기들 역시 이분들의 시각에서 본 세상의 일면이겠지요. 자수성가형 이민자들의 편향을 보여주는 사고방식이라며 거부감을 느낄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일면의 불편한 진실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요.

아까 교민분의 심정을 헤아려 보시면 인구 분포로 볼 때 서민들이 훨씬 많은데도 공화당이 집권하는 이유의 일부가 와 닿으실지도 모릅니다. 공화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다수는 아시다시피 미국 중부, 남부의 백인들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신들은 주말이면 교회에 가고, 검소하고 투박한 삶을 살면서 근면하게 일하며 살아 왔습니다.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무슨 대단한 일을 해 줄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냥 방해만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자꾸 세금을 올려서 게으름뱅이, 마약쟁이, 범죄자, 불법이민자들을 먹여 살려 주려고 합니다. 게다가, 옆집까지 한참 떨어져 있는 시골집에 미치광이나 강도라도 나타나면 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킬 것은 내 총 밖에 없는데, 이것을 빼앗아 가려고 한답니다.

이들을 어떤 거대담론으로 설득할 수 있습니까? 너희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살던 흑인들을 억지로 잡아와서 목화농장에서 강제노동을 시켰으니, 너희는 자손만대로 저들에게 죄값을 치룰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설득해야 하나요? 인간은 도덕적 설교만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들이 느끼는 부당함에 대한 답을 주어야 설득이 가능하지요.

그 답에 대한 실마리 역시 이곳에서 오래 살아 오신 아까 그 친지분과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듣던 제가 질문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빈민가 사람들은 사회에 생산적으로 기여하는 것 없이 문제만 일으키는 골칫거리로 보고 있겠군요. 그런데, 의외로 대답은 이랬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한 번 생각해봐. 얘네들이 없었으면 미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되었을 것 같애? 얘네들이 농장에서, 공사판에서, 공장에서 일해서 이렇게 만들어 놓은거야.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이들의 역할이 컸다구. 지금 상황이 바뀌었다고 그걸 잊으면 안돼.

역시 먹물들 얘기보다 직접 삶의 현장에서 이들과 몸을 부딪히며 살아 온 분의 본능적 감각이 더 와 닿더이다. 사실 이분의 이야기는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쓰여진 경제학자, 기자들의 글로 이미 많이 읽었던 이야기지만 느낌이 다르더군요. 산업구조 고도화, 생산구조의 세계화로 인한 국내 2차산업 종사자의 몰락입니다.

필라델피아 외곽지대에는 큰 공장이 여러 개 눈에 띄었는데, 다 문을 닫았더군요. 미국은 더 이상 자국내 굴뚝 공장에 의존하는 국가가 아닙니다. 공장은 다 임금 싼 중국, 인도로 갔잖아요.

이런 현상에 대하여 월스트리트에서 애널리스트, 헤지펀드 운영자로 일해 온 앤디 케슬러(Andy Kessler)가 쓴 ‘변화사냥꾼(Running Money)’이라는 책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오히려 미국의 우위가 더 확고해지고 있다고. 컴퓨터를 예로 들 때, 미국은 컴퓨터칩을 디자인합니다. 그러면, 한국, 대만 업체가 600달러를 지불하고 그 디자인을 사서, 열심히 컴퓨터칩을 만들어서 700달러에 소니에 팝니다. 그러면 소니는 노트북 컴퓨터를 만들어서 1000달러에 미국에 팝니다. 그럼 미국은 1000달러 어치를 수입한 것이지만, 이 생산구조에서 가장 마진이 높았던 600달러의 수출은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왜? 미국업체는 사실 조세피난처인 그랜드 케이먼 아일랜드에 서류상 본점을 두고 있는 다국적 내지 무국적 기업이니까요. 사실, 컴퓨터칩을 디자인한 것은 인도에서 유학와서 MIT를 나온 영재 연구원입니다. 이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월가의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펀드에 투자됩니다. 그러면, 그 펀드는 한국, 대만의 IT 업체 주식을 싼 값에 매집했다가 개미들이 한참 꼬였을 때 큰 이익을 남기고 팔아 버리곤 합니다. 결국, 부는 실질적으로 미국 내에서 돌고 있지만, 통계상으로는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읽힙니다. 미국은 제발로 걸어오는 세계의 영재들을 고용하여 디자인하고, 투자하며, 세계는 부지런히 일해서 싼 값에 좋은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공급합니다. 결국 무역수지 적자가 하등 문제될게 없다는 논리죠. 얄미울 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월스트리트의 분석입니다.

따져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한 국가들로 평가되는 북유럽의 스웨덴 등의 나라도 결국 이러한 체제로 부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IKEA는 이른바 "모듈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IKEA에서는 디자인과 완벽한 품질관리만 하고 모든 제품 생산은 중국, 인도, 베트남,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저임금 국가에서 외주로 이루어집니다. 자국내에 이질적인 저임금 노동력 계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사회의 통합성도 높겠죠.

이처럼 지식기반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산업구조가 이행한 사회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던 계층은 잉여인력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같은 저학력이라도 지역사회 기반이 탄탄한 백인들은 사정이 낫습니다. 대학을 안 나왔고 전과가 있어도 마을에서 배관공으로 일하며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과 연애를 할 수도 있는 거구요(미국 인기 드라마 얘기입니다), 동네 카페테리아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슬럼가 출신 흑인들은? 계속 슬럼가에서 살 수밖에요. 가정환경, 교육환경 모두 열악한 상태에서 고도화된 산업구조에 걸맞는 고급 노동력을 갖추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주변에 온통 마약 밀매자와 갱 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좋은 롤 모델 자체도 없고요.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이 참 골칫거리겠죠. 사실, 정부 관료들이 휴머니스트들이어서 이들에게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눈먼 돈을 지출해 온 것은 아닐 겁니다. 이들이 궁지에 몰리면 살기 위해, 또는 자포자기 상태로 범죄와 소요로 사회를 공격하는 위협이 될 것이고,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에는 다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기에, 일종의 보험료에 해당하는 비용을 미리 지출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다시 경제구조 내에서 제 역할을 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기회, 근로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미봉책만 제공하고 있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겠죠.

게다가, 지금 있는 이들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불법이민자들이 국경을 넘어 몰려들어 와서 그나마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저임금 일자리를 가져가면 궁지에 몰린 이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자는 이야기가 나름 절박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구요.

그래서 결국 어쩌자는 이야기냐구요? 감히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알지도 못하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인간 세상의 문제는 참으로 복잡하여 일도양단에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면이 많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다들 참 명쾌한 정답을 갖고 계신 것 같더이다. 진보, 보수, 좌파, 우파. 결국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문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다층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목소리는 귀한 것 같습니다.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고, 하고 있으면, 간단히 말해서 누구 잘못이란 말이냐! 너 이런 소리 하는거 보니까 저쪽이지! 라고 윽박지르는 목소리가 당장 튀어나오지요. 아 저는 그냥 홍시 맛이 나니까 홍시라고 말씀드린 것이온데...

특히,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이 오히려 더 빠져있는 도그마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우연히 미국에 연구하러 온 어느 사회운동가이자 사회학자인 분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을 동료들이 알면 나를 변절자라고 욕하겠지만, 전문직 종사자들의 기득권도 일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아니, 인간사회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학문에 종사하는 분이 저 정도를 인정하기 위해 변절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는 용기를 내야한다면, 도대체 중세 암흑시대의 카톨릭과 뭐가 다른 겁니까?

인간사회는 참 묘해서 교과서처럼 정의가 늘 승리하지도 않고, 거기 앞서 무엇이 정의인지도 정의하기 어렵고, 분명히 선의에서 비롯한 정책이 오히려 사람들의 고통만 심화하기도 하고, 인간의 능력 및 노력에는 슬프지만 많은 격차가 있고, 빈곤과 불평등에는 사회가 책임질 부분도 있지만,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런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뭔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인가요? 결국은 직시할 문제와 모색할 해결책 두 가지가 있을 뿐 아닐까요?

 

 

 

 

 

 

 

출처 :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
글쓴이 : 숲속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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