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계사년 새해, 기사의 꿈
2013.2.9. 새벽 4시경, 강북구 미아역부근입니다. 간밤, 일거리 없는 거리를 헤메며 달리며 어느덧 이곳에서 일을 마감해야 하나봅니다.
이 대리기사일을 시작하면서, 일 끝나는 시각, 이렇게 피씨방을 애용하고 있군요. 그러다보니, 간밤 하루 일의 궤적을 흩어보곤 합니다. 아...지난밤, 내가 달려온 거리와 시간의 흔적들, 그 결과로 주어져 있는 내 주머니 돈의 부피, 이러저러 사항들을 생각하노라면, 답이 나오는 시절을 보내고 있는건지 답답합니다.
조금전 여기까지 온 손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 설 연휴라 기사들이 없을줄 알고 걱정했는데....'
사실 이런 날 대리기사들이 넘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일겁니다. 이 좋은 민족의 명절에도 1-2만원 때문에 새벽에 헉헉대며 언덕위 구석까지 달려오는 대리기사들을 보면, 손님들이 오히려 놀랍니다. 아...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하는 감동이 먼저일까요, 아님...
계사년입니다. 임진년 지난 한해를 돌아보노라 카페를 뒤적이니, 어느덧 꼭 이맘때, 소망을 담은 글이 보입니다. 기사의 꿈....
기사의 꿈, 새해에는 대리기사들에게도 그런 꿈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이 글을 썼던 시절보다 지금은 조금 더 희망이 보이긴 합니다. 아..그 시절, 삭풍 부는 맨땅에서 몇몇 동료들과 강남교보타워 사거리 새벽집회를 하던 일, 변변한 홍보물 한장 없어 매직펜으로 종이에 쓰고 붙이고, 목쉬어가며 벌벌 떨면서 시작한 대리기사권익운동, 그 의기와 성과가 모여 어느덧 이 자리까지 왔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계사년의 희망...뭐 이런 말이라도 맹글어지도록, 계사년 올 한 해, 이런 날들이 되면 좋겠다는 꿈...꿔봅니다.
기사의 꿈'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1. 벌금이니 머니 하는 짓거리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사들이 오더를 취소한다고 기어이 돈으로 벌금을 물려서 삥땅 뜯는 제도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시간페널티나 뭐 좀 더 합리적인 제도가 도입되면 좋겠습니다. 아니, 콜한 오더룰 할 수 없이 취소해야만 할 정도로 형편 없는 똥콜(터무니없는 가격의 오더)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더 콜한지 5분이니 10분이니, 시간에 쫓겨 헉헉대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가도 밥벌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프로그램사들의 뻥튀기 장난이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연합콜로 고만고만한 오더수 가지고 뻥튀기 해먹으면서 프로그램이나 팔아 먹는 허깨비 놀음에 우리 기사들이 놀아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법 플을 깔지 않아도 집중해서 핸드폰 열심히 보면 짭자름한 오더가 잡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운행료가 조금은 더 '정상화' 되면 좋겠습니다. 예컨데, 서울시청에서 인천시청까지 40K, 일산 마두역에서 강남역까지 35K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님들과 기사가 요금분쟁 없이, 건네주는 요금이 아깝지 않도록 대리기사들이 신뢰받게 노력하고 충실한 운행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같이 가는 차주가 자신의 비싼 차량과 소중한 목숨을 잘 지켜 운행해주는 대리기사를 조금은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대리기사들의 핸들 잡은 손아귀에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없는 운행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핸들 잡은 기사들 손에 원통함과 분노가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4. 대리업체의 직원들이 조금은 더 친절히 전화를 받아주면 좋겠습니다. 손님에게 전화 했으면 무조건 가야한다는 이따위 말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엉성하게 올린 콜에 기사들이 골탕을 먹지 않고, 기사들이 업자의 잘못에 당당히 맞서도 되고 뒷탈이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5. 기사들이 매달 납부하는 대리보험료를 업자들이 몇십퍼센트나 빼 먹는 도적질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사가 사고가 나서 연락하면 왜 자꾸 사고를 내냐고 핀잔이나 주는 저급한 싸구려 상황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0퍼센트나 되는 수수료를 떼고도 보험료 삥땅, 피뎅이 강요, 프로그램비 수입 등, 기사장사로 먹고사는 업자사무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벌금을 더 뜯어먹어도 되고, 보험료를 마음대로 올려도 되고, 어차피 대리기사들 투덜대다 말 작자들, 마음껏 빨대 꽂아 피빨아먹어도 된다고 착각하는 업자들이 종족번식 하지 못하도록 부랄을 발라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기사들의 공동체운동이 커져가면 좋겠습니다.
6. 같은 기사들이 길거리에서 만나면 한없이 반가운 마음에 반겨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기사들이 널려있지 않고, 강남 한복판의 기사수가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만큼만 되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토해낸 똥콜을 옆 기사가 반갑게 콜하고 달려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업체 앞장이 기사, 찌질이 기사들이 없어지고, 기사들 내부를 이간질 하는 짓거리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7. 기사들이 정기적으로 지리교육, 좌표강좌, 운행교육을 받고 좀 더 정예화 될 수 있으면 좋겠읍니다. 기사들 권익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하며 그 성과가 모여지면 좋겠습니다. 대리기사라는 직업이 조금은 더 당당하고, 최소한도 주변 사람들이 알아도 '쪽팔리지' 않을 일로 인정 받으면 좋겠습니다. 기사들간에 인간적 우정과 서로에 대한 배려, 존중의 분위기가 가득하여 든든한 동료애로 힘껏 뭉쳐있으면 좋겠습니다.
8. 최소한 서울만이라도 대리기사들이 이 추운 겨울바람을 잠시 피할 수 있는 대기실이라도 각 전철역 근처에 마련 되면 좋겠습니다. 기사들이 밤 늦게 편히 이동할 수 있는 셔틀이 좀더 좋은 차량으로 좀더 안전하고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9.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올 한해, 우리 대리기사들의 주체적 조직, 그것이 전국대리기사협회이건 또 다른 조직이건 더욱 든든하게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불법과 무도한 횡포에 맞설 수 있는 구심점이 더욱 큰 힘으로 거듭 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들을 위해 진실로 헌신하는 분들이 많이 나오고, 업자들이 더 이상 감히 기사들 모가지에 빨대를 꽂아 피 빨아먹을 생각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판에서 억울함과, 서러움과 가난한 불행에서 해방되어 열심히 일할 보람과 신명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10. 음주운전의 방지, 교통사고의 예방, 시민의 안전한 이동과 귀가를 책임지는 대리기사들의 사회적 역할이 인정을 받고 합법화 되어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빨리 공정한 대리운전법이 만들어져서 대리업체와 대리기사세계가 정비되고, 시민들이 안전하게 대리기사를 이용할 수 있는 풍토가 되면 좋겠습니다.
11. 아니 차라리, 위 사항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힘 약한 기사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충분히 밥벌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대리기사들이 모여서 협동조합도 만들고 그런 공동체를 중심으로 다시금 운동을 통해 일어설 수 있는 희망들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들이 가능하도록, 계사년 올 한해, 기사의 꿈이라는 것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의 꿈. 내년 이맘때에는 좀더 희망찬 내용으로 가득차면 좋겠습니다.
(돈데보이 Donde Voy-어디로 가야하나-, 조금 슬픈 노래이지만,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