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누군가의 슬픔을 강요하는 개그는 개그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강요하는 개그는 개그가 아닙니다.
- 개콘의 <미필적 고의>는 대리기사들의 고통을 유도하는 미필적고의이다
한국의 대표적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는 최근 미필적고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기사나 택배기사를 소재로 하는 개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허겁지겁 급하게 살아가는 기사들과 그에 대조되는 일부 부유층등, 유한계층의 등장을 통해 웃음을 주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위화감이 강요되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일정한 사회적 해학을 담고자하는 노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몇푼 요금에 안달하는 기사들의 속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할일들만 하는 모습에서 미필적고의를 느끼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걸까요?
관련 프로그램 --> 개그콘서트 미필적고의 2013년1월13일자
하지만 그 개그에 등장하는 대리기사의 모습은 참으로 비루하고 속도 없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됩니다. 자신이 정당하게 일해 받아야 하는 대리비 1만3천원 때문에 온갖 인간들의 갈등의 언저리에 '낑겨서' 허둥댑니다. 심지어 손님들의 싸움 과정 속에서 내동댕이 쳐진 요금을 주워가지려 온갖 수모를 감수합니다. 엉뚱한 사람의 제삿상에서 큰절을 해야하고 죄지은 사람처럼 절절 맵니다.
kbs방송의 개그콘서트 중 <미필적 고의>: 개그맨 박성광이 대리기사나 택배기사로 등장하여 부유층 사이의 갈등 속에
당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유도하고 있다 .
대리기사는 음주운전을 방지하고 교통사고를 예방하며, 시민의 안전한 이동과 귀가를 책임지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비록 가난과 고된 노동, 온갖 부조리와 횡포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노동으로 땀흘려 일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인 것입니다.
이런 대리기사들을 일개 개그의 하찮은 소재로 전락시켜 얻고자 하는 웃음이 과연 얼마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저희 기사협회는 심히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개그의 특성상, 일정한 과장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정도가 너어무~ 심합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며 잠시 허허대고 넘어가기엔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리기사(박성광 역)가 손님들이 집어던진 돈이라도 주어가지려고 눈치보는 장면
그 프로그램을 보는 대리기사나 택배기사들이 과연 공감과 함께 웃음을 자아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이 사회가 바라보는 눈길이 아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염려 됩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의 슬픔을 밑천 삼아 웃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더 이상 개그가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타인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근로현장의 누군가를 '두번 죽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건강한 개그가 아닐 거라 저희는 믿는 것입니다.
개콘의 <미필적고의>야말로 근로대중을 두번 죽이는 '미필적 고의'입니다.
" 미필적 고의,
-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가능성을 인식(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 의 발생을 인용(認容)한 심리상태.
예컨대,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밤에 자기의 집에 방화(放火)할 때에 혹시 옆집까지 연소(延燒)하여
잠자던 사람이 타죽을지도 모른다고 예견하면서도, 타죽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화한 경우와
같다. 미필적 고의는 불확정적 고의의 하나이다. [출처: 두산백과]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나쁜 결과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도 그 행위를 강행하는 일이 미필적고의의 죄라고 한다면, 그 개그 프로그램이 대리기사나 택배기사 등, 성실히 살아가는 근로대중에게 다른 아픔을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는 없었던 걸까요? 아니 그 개그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미필적고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개그가 던지려하는 메시지인걸까요?
과거 대머리나 외국인노동자를 등장시켜 웃음을 자아냈던 개그프로그램들이 그 성공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을 조롱거리로 삼고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사회적 비판을 받았던 일들이 있습니다.
<미필적 고의>가 비루한 대리기사나 택배기사의 모습을 등장시켜 얻고자 하는 의도와 달리, 고통 겪는 기사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준다는 생각은 안해보는 걸까요?
새로운 발상의 아이디어를 기대합니다.
그간 대리운전시장의 급격한 팽창과 함께 이미 대리운전은 우리들 실생활에 깊이 개입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적 음주문화 속에서 대리운전은 이제 없어서는 안될 우리 사회의 필수적 영역으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대리기사를 소재로 하는 개그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전국대리기사협회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며 현실의 부조리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또는 그러한 노력을 갈망하는 대리기사들의 모습 속에서 새롭게 건강한 웃음을 자야낼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예컨데, 택시 운행 중 유쾌한 웃음과 삶의 정겨움을 보여주고 있는 모 방송사의 택시관련 코메디같은 아이디어가 적용될 수는 없는 걸까요? 대리기사와 시민들의 만남 속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인간적 깊이와 함께 많은 웃음을 줄 수 있는 개그 소재도 발굴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KBS 방송의 개그콘서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즐거움과 웃음을 제공하고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입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이런 큰 프로그램을 이끌고 계시는 피디님들과 작가님, 그리고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저희들이 드리고자 하는 의미를 새겨주시어 한결 유익하고 즐거운 방송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환한 웃음은 물론,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려 하는 대리기사나 택배기사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더 없이 고마운 일입니다.
저희 전국대리기사협회는 비록 자그마한 조직이지만, 대리기사의 현실에 대한 이해나 소재가 필요하다면 언제건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개그콘서트의 충실한 발전을 기대합니다.
2013. 1
전국대리기사협회
* ps: 이 글이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 2013년1월23일자 기사로 실렸군요. 링크 걸어놓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개콘의 미필적 고의>? 웃기지 않습니다. <--- 클릭하세요.